본 논문은, 비동일성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으로 착취 해법을 제시하는 논문입니다.
비동일성 문제란, 어떤 원리에 근거한 행위로 인해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특정한 사람들이 그 원리로 인해 생긴 부담을 이유로 그 원리를 반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이 논문에서 제시되고 있는 하나의 예를 들자면, 현재 세대의 사람들이 자원고갈 정책을 선택할 경우, 미래 세대의 사람들은 대단히 불리하고 핍진적인 여건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또한 그 미래 세대의 사람들은 자원고갈 정책을 선택하지 아니하였을 경우에는 존재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원고갈 정책이 아니라 자원보존 정책을 선택하여 풍요로운 여건 속에서 살 실제의 삶이라는 것을 그 미래 세대 사람들은 갖지 못하므로(비교 대상이 없으므로) 해악을 입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논문은 그러한 경우에도 미래 세대의 사람들은 부당하게 착취당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자원고갈 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개진합니다.
그런데 사실 논문의 주요 논지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습니다. 특히 이 논문이 어떤 사람과의 교류 내지 거래를 포함하는 모든 바람직하지 못한 대우를 모조리 착취 개념으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방식으로 대우하지 마라' 해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착취'라는 단어를 수사적으로 사용하고 있을 뿐, 엄밀한 사안 분석에 체계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착취에 관한 유망한 이론으로 제가 생각하는 것은 시민교육센터에 소개된 힐렐 슈타이너의 이론이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논문은 '권리 해법'을 간단하게 기각해버리는데, 권리 해법이 미래 세대가 겪는 경험의 질을 감안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권리 침해 여부와 권리 침해로 인해 생겨난 해악의 정도가 다르므로, 권리 해법이 어떤 것을 권리 침해라고 판정함에 있어 그 해악의 정도까지 미리 온전히 다 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될 리는 없습니다.
다만 이 논문은 착취 개념, 해악 개념에 대한 여러 제안들을 일별하고 있어서 그 점에서 한 번 읽어볼 만한 점은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중간에 '회고적 선호가 어떤 사태가 일어났기를 바란다고 하여도, 그 사태가 권리 침해가 아니라고 하지 못한다'는 논지를 정립하는 부분이 나오는 데 이 부분은 상당히 중요한 논지입니다.
또 하나의 논지를 추가하자면 많은 경우 친출생주의자들은 출생이 되어 박탈(존재 이후의 비존재)을 겪을 입지에 있는 사람들이 태어난 쪽을 선호한다는 것을 친출생주의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러나 이미 태어난 사람들에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가?'를 물을 때, 그 물음에 답하면서 떠올리는 사고실험은 사실상 이미 실제 세계에서 존재하는 자기 자신의 사멸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며, 그래서 이미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지금 고통 없이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면 더 좋을 것인가'를 묻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친출생주의자들이 이와 같은 구조의 질문을 하는데, 이러한 질문이 적절하지 않은 것인 이유를 보강하는 논지를 익힐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