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 저자는, 정당성에 관한 다음 두 가지 견해 모두를 비판하면서, 제3의 견해를 내세웁니다.
비판받는 견해1: 어떤 권위(authority)가 정당성(legitimacy)를 갖고 있다는 것은 그 권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의무를 필함한다.
비판받는 견해2: 어떤 권위가 정당성을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권위가 자신이 제정한 명령을 집행하게 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허용된다.
견해1은 달리 말하자면 정당성 있는 권위는, 그 적용을 받는 사람들에게 권위의 명령에 따를 것을 요하는 호펠드적 청구권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견해2는 달리 말하자면 정당성 있는 권위는, 그 적용을 받는 사람들은 권위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 집행하는 것에 대하여 대항할 수 있는 청구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견해3: 권위가 정당성 있다는 판단이란 그저, 권위의 적용을 받는 사람들이 그 권위가 그 사람의 규범적 상황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관행적 의무를 부과하고 집행하며 유관한 사회적 사실을 변경할 도덕적 형성권의 행사에 좌우되는 도덕적 상태에 있다―즉 면제권이 없다―는 판단이다. 권위의 적용을 받는 사람이 [역자-복종을 요하는 청구권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까지 지는가는 열린 문제로 남는다.
저는 저자의 견해와 그 견해를 뒷받침하며 제시된 논증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호펠드적 도식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는 개념 분석에 의해 도출되는 것은, 저자가 말한 형성권-처분에 의해 좌우되는 상태 쌍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의 의무가 성립한다는 점은 개념 분석이 아니라 정치도덕적 논증에 의거해야 합니다.
제가 생각하듯이 저자의 견해가 타당하다면, 사실 정당성이라는 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두 가지 분명히 상이한 뜻으로 구별되는 것을 담고 있는 애매한 개념이라는 점이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어떤 권위를 권위로서 인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정당성 개념입니다. 이 최소한의 정당성은 이 논문의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은 제한된 형성권을 필함합니다. (왜 제한된 형성권이라고 하냐면 그것은 청구권에 상응하는 복종 의무를 생성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온전한 정당성 개념입니다. 이 온전한 의미의 정당성(legitimacy in full sense or in complete sense)은 권위가 자신의 명령을 발령하고 집행하는 것이 최소한 허용되며 더 나아가 이에 상응하는 복종 의무를 그 적용을 받는 사람들에게 지울 수 있는 내용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최소한의 정당성 개념은 그 사회의 통치구조가 최소한의 합리적 의사소통의 기제를 제공하여 연속적 지지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최소한을 보장하는가에 의해 그 정치적 권위 자체에 대하여 판단을 내릴 때 적용됩니다.
반면에 온전한 정당성 개념은 정치적 권위(이를테면 대한민국, 미국, 북한, 중국, 일본 등) 자체에 대해서는 양가적으로 적용될 수 없으며 기껏해야 대략적인 정도를 표시할 수 있을 뿐이며, 구체적인 법률이나 시행령, 처분의 내용에 따라 성립하거나 성립하지 않을 수 있는 매우 특정적이고 구체적인 것입니다.
입헌민주주의 사회는 최소한의 정당성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서는 안 되며, 국가의 매 행위는 온전한 정당성을 충족할 수 있어야 하며, 법의 해석은 그 문제에 있어서 그 권위체가 온전한 정당성을 갖추도록 하는 기제 하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이 기제 하에서 이루어진다 함은 법을 어느 층위에서건 온전한 정당성을 갖추도록 그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심사를 비롯한 통치구조의 기제에서 누락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법률이 과잉금지원칙을 어겼거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였을 때, 법원은 이 법률을 자의적으로 좁게 해석함으로써 합헌으로 간주한 다음 적용해서는 안 되며, 이 법률에 대하여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