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의 법정, 제3재판부의 공판기일 두 번째 날을 시작합니다.”
보라색 민둥머리 외계인이 피고인석에 앉아 있다. 그의 이름은 타노스다.
그는 도덕의 법정에 섰다.
도덕의 법정에는 배심원들이 기소와 변론을 듣고 판단하기 위해 가지런한 줄을 지어 자리에 앉아 있다.
법정을 관장하는 판사는 높은 법대 위에 앉아서 절차 진행과 판단 규칙 지도를 맡고 있다.
판사는 변호인과 피고인, 검사의 출석을 확인하고는 무엇인가를 끄적이더니, 돋보기 안경을 다시 벗고는 변호인을 바라보았다.
“변호인, 변론 하세요.”
보라색 민둥머리 덩치의 귀에 무엇인가를 조그맣게 속삭이며 메모를 연신하고 있던 변호인은 판사의 말에 법대로 고개를 들었다.
“네!”
변호인은 넥타이를 바로잡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타노스의 변론’을 시작하였다.
“타노스가 악당으로 치부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호인은 탕! 하고 변호인석의 긴 책상을 치면서 일어나 말한다.
“도덕의 법정에서 문제되는 것은 겉으로 어떻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떠한가이다. 그 실질을 본다면 어찌하여 타노스가 고뇌하는 영웅이 아니라 악당이란 말인가?”
도덕의 법정의 배심원들은 타노스의 변호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주목한다.
“여러분이 주목해야만 하는 사실은, 타노스는 우주의 인구가 지나치게 불어나 균형이 깨져 모두가 멸망하는 파국을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추구한 이라는 점이다. 이것이야말로 타노스를 도덕적으로 평가할 때 모든 것을 압도하는 점이다. 다른 나머지 모든 사항들은 부차적일 뿐이다. 모두가 멸망하는 파국이란 우주에서 가능한 가장 큰 악(惡)이다. 가장 큰 악을 막는 행위보다 우주에서 중차대한 일은 없다. 왜냐하면 어떤 행위의 중요성은 그 행위가 가져올 전체 선의 양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본 변호인이 오늘 저녁 초밥을 먹느냐 쌀국수를 먹느냐에는 거의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다. 둘 다 만족스러울테니 고민하는 것이니 차이가 있어 봐야 얼마 되지 않을 것이고, 그 얼마 되지 않는 차이도 본 변호인에게만 일시적으로 귀속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의 식단을 어떻게 마련하는가는 상당히 중요하다. 한 나라의 의회가 정확한 경제정책을 결정하는 행위는 많은 사람들의 경제적 복리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치므로 훨씬 더 중요한 행위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우주에서 가능한 가장 큰 악이 발생하는 사태를 방지하여 그런 악이 없는 사태로 만드는 것보다 어떤 행위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좋고 나쁨의 격차가 더 크게 생기는 일은 없지 않은가. 타노스는 바로 그런 문제에 직면했다. 그리고 바로 그 가장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해서, 어마어마한 선을 발생시키는 쪽으로 행위한 사람이야말로 우주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다.”
변호인은 양팔을 쭉 펼친 다음 드라마틱하게 앞으로 모으면서 덧붙인다.
“게다가 자신의 행위로 달성할 선을 고려함에 있어, 타노스의 불편부당함(impartiality)은 명명백백하게 이미 증명되었다. 타노스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행동하지 않았다. 이는 타노스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존재를 희생하는 것을 눈물을 머금으며 감수한 점에서도 드러나고, 또한 우주 최강의 권력조차 한낱 초개(草芥)와 같이 버리고 농부로 자족(自足)하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타노스의 변호인은 손목 시계를 흘끔 바라보고는 팔을 치켜들었다.
그는 타노스가 아주 대단한 영웅이나 최고급의 선인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타노스야말로 영웅(英雄) 중의 영웅이요, 선인(善人) 중의 선인이다. 왜냐하면 보통의 영웅은 한 사람의 목숨, 한 지역의 인구, 아무리 많아도 한 행성의 거주민들을 위해서만 행위하는 데 타노스는 전 우주의 절반을 구하기 위해 행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타노스를 악당이라고 말하지 않는가!’라고 배심원 여러분이 묻고 싶은 것도 안다. 그러나!”
변호인은 쇼맨쉽을 드러내는 자세로 양팔을 쭉 폈다가 다시 손을 모았다
“타노스를 악당으로 보이게끔 한 것은, 타노스가 어벤져스에게 졌다는 바로 그 승패에 관한 우연한 역사적 사실일 뿐일 것이다. 타노스는 이길 수도 있었다. 단지 사실적 여건이 그에게 불리했을 뿐이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던 선한 행위가, 어벤져스와 같은 악인들의 방해로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고 해서, 그 사람의 보석 같이 빛나는 선한 의지마저 부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호인은 집게 손가락을 치켜든 두 손을 나란히 들어 대비시켰다.
“타노스는 악당으로 보이지만 진정한 영웅이고, 어벤저스는 영웅으로 보이지만 진정한 악당이다.”
변호인은 말한다. “왜냐하면 타노스의 행위가 실패하였다 하더라도, 행위의 결과를 행위자가 통제할 수 없을 때 그 의도를 보고 도덕적 가치를 평가해야 한다는 원칙을 따르자면, 타노스의 행위는, 보석처럼 빛나고 생각하면 할수록 감탄을 자아내는 선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플라톤의 <국가>에서 트라시마코스는 어느 누구도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로, 다음과 같은 사고 실험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언급하고 있는 두 사람의 삶과 관련된 판정 자체는, 가장 올바른 이와 가장 올바르지 못한 이를 우리가 대비시켜 보게 될 경우에, 바르게 내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따라서 완벽하게 올바르지 못한 자에게는 가장 완벽한 불의를 인정해 주되, 그에게서 조금도 감하지 말 것이며, 그가 최대의 올바르지 못한 짓들을 저지르고도 올바름에 있어서 최고의 평판(doxa)을 안겨 줄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 그렇게 해서 이들 둘이 마침내 저마다 그 극에, 즉 한쪽은 올바름의 극에, 다른 한쪽은 올바르지 못함의 극에 이르게 하여, 이들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행복한지 판정받도록 하는 겁니다.”(Platōn, Politeia. 박종현 옮김, 『국가‧정체』, 서광사, 2005, 130-131면)
트라시마코스의 사고실험을 길게 인용한 후, 타노스의 변호인은 말을 잇는다.
“트라시마코스가 틀렸다는 것을 타노스는 보여주었다. 타노스는 바로 이러한 트라시마코스가 상상한 엄격한 시험을 실제로 통과했다. 타노스는 엄청난 악명을 뒤집어쓰는 것을 감수하면서도 올바름의 극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그 극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변호인은 변호인석에 놓인 물컵을 벌컥벌컥 마시한 후, 최후변론을 맺는다.
“결론적으로 타노스가 추구했던 선의 거대한 규모, 그 선을 추구하는 자세의 불편부당함, 그리고 우주에서 제일가는 악명과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까지도 기꺼이 희생하려고 하는 정신을 감안할 때 타노스야말로 우주 최고의 영웅이요, 선인이다.”
변호인의 웅변적인 어조가 법정을 가득 메웠다.
“이것으로 변론을 마친다.”
양복 상의 맨 아랫단을 탁탁 하고 잡아 내려 자신의 양복을 펴더니 스마트하게 자리에 앉는 변호인을 배심원들은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굵직한 목소리에 눈을 돌렸다.
“그러나!
도덕의 법정에서 타노스를 기소한 검사가 일어섰다.
검사는 안경을 고쳐 쓰고는 배심원들을 찬찬히 바라보다 다시 입을 뗐다.
“그러나, 그 모든 변론에도 불구하고 타노스는 악당이다.”
“우선 우리는 타노스가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쟁점에 관한 믿음을 획득할 때 저지른 인식적 의무 위반을 지적함으로써 타노스가 악당이라는 점을 논할 수 있을 것이다.”
“타노스의 핵심 믿음, 즉 인구가 너무 많아지면 우주의 균형이 깨어져서 전 우주의 지성적 생명체에 어마어마한 비참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은 거짓이다. 그의 핵심 믿음이 거짓이었다고 볼 증거들이 적어도 지금으로선 아주 충분히 있다. 결정적인 점으로, 타노스가 사라지게 만든 우주의 인구 절반을 되살리고 나서도 우주에는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다시 살아나서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우주의 균형에 대한 타노스의 믿음이 거짓이었다면 타노스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류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오류에 비례하여 도덕적으로 극악한 짓을 저지른 것이다. 타노스에게 두드러진 점을 자신이 어마어마한 충격(impact)을 갖는 기획을 추구하면서도 그 기획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인식적 의무를 되는 대로 해태(懈怠)하였다는 것이다. 타노스 자신은 충분히 알아봤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무를 이행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무를 이행했다는 사실과 같지 않다. 약속을 까맣게 잊고 있어서 자신은 아무 약속도 어기고 있지 않은 사람이 실제로 약속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인식적 의무의 엄격함은 쟁점의 충격에 비례한다. 타노스가 추구한 기획처럼 우주의 절반을 날려버리는 것과 같이 규모가 거대한 기획을 찬성하는 믿음을 획득할 때에는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의 철저하게 엄격한 인식적 의무의 이행이 요구된다.”
검사는 사례를 하나 든다.
“만일 핵을 보유한 어떤 나라의 대통령이 타국의 어느 도시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막 발병하여 공기중으로 무서운 속도로 확산되었다는 첩보를 받는다고 해보자. 이 첩보에 따르면 불과 2주가 지나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감염될 것이다. 그리하여 대통령은 이 첩보 하나를 믿고 곧바로 핵폭탄 버튼을 누른다. 그러나 첩보의 대상이 된 바이러스는 치명적이긴 했지만 확산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그 타국은 이미 이를 통제 하에 두어가는 상태였다. 그러나 핵공격으로 인하여 상호 파괴의 핵전쟁이 벌어졌고 종국에는 핵겨울의 여파로 지구 인구의 절반이 죽고 말았다. 공식적 정보기관의 첩보는 때로는 작은 결정을 내리는 충분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신뢰할 만한 첩보라고 하여도 첩보 하나에 이러한 거대한 결정을 내리는 대통령은 커다란 책임을 해태한 것이다.”
검사는 양 주먹을 나란히 들고는 약간씩 움직인다.
“그런데 타노스는 이 가상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통령보다, 두 가지 면에서, 더욱 극심할 정도로 형편없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로 타노스의 기획은 전 지구에 미치는 것을 넘어서 전 우주에 미치는 최대의 규모를 가진 것이었기 때문에 요구되는 인식적 의무의 수준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엄격한 의무 수준과 비교해서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극도로 높았다. 둘째로, 타노스는 급속히 퍼지는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대통령의 상황과는 달리 자신의 믿음을 철저히 검증해볼 시간적 여유가 충분히 있었다.”
“타노스가 수호하고자 하는 우주의 균형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세속적이고 경험적인 의미로, 자원을 소모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지적 생명체가 계속 불어나게 되면 자원과 환경의 한계를 견디지 못하고 그 종족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족이 실제로 그렇게 해서 멸망하게 된다면, 그 전 세대가 환경에 부과한 부담으로 인해 비참한 사멸의 괴로움을 겪는 인구는 절반에 그치지 않고 그 전부에 미친다. 따라서 총 괴로움의 최소화(minimization of total sufferings)를 추구하기 위해 타노스는 전 우주의 절반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지금 절반을 제거함으로써 생기는 괴로움은 나중에 우주의 전 인구가 겪을 괴로움보다는 반절은 작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한다고 하면 타노스의 행위는 도통 이해불가능한 것이 된다. 경험적으로 상호작용하지 않는 행성별로 따로따로 봐서, 그 문명사가 자원 소모와 환경 부담이 돌아올 수 없는 지점을 건넌 경우에만 주민의 절반을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전에는 라이프스타일을 계도(啓導)하는 것이 우선적이어야 한다. 게다가 어떤 행성의 거주민들은 자원과 환경의 한계를 잘 감안한 라이프스타일을 취하고 있을 것이고 어떤 행성의 거주민들은 이를 감안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을 취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를 싸잡아서 다 균형에 어긋났다고 하는 것은,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지속불가능한 생활방식과 같게 보는 셈이다. 추가로 누릴 수 있는 이득을 포기하면서까지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을 취하던 행성의 주민들은 자기들과는 아무 관계없는 문제로 처형당한 것이다. 이것은 침략전쟁을 하는 국가가 있다는 이유로 중립국까지 싸잡아 핵폭탄을 터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타노스는 두 가지 면에서 비례 원칙의 한 구성부분인 피해의 최소성 원칙(principle of least restriction)을 위반한 것이다.”
“따라서” 하고 검사는 말을 잇는다.
“타노스가 수호하고자 하는 우주의 균형은 초월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그럴법한 것 같다. 즉, 우주에는 어떤 신비스러운 질서가 있는데 지적 생명체가 한계 지점 이상으로 불어나게 되면 그 신비스러운 질서가 깨져서 갑자기 종말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초월적인 믿음은 반증이 불가능하다. 그런 믿음이 거짓이라는 것을 밝힐 길이 없다면, 그런 믿음이 참이라는 것을 보증할 길도 없다. 이런 초월적인 우주의 균형에 관한 믿음을 타노스가 어떻게 획득하게 되었건, 그것은 신앙(faith)은 될 수 있어도 결코 지식(knowledge)이라고 할 수 없다. 지식이란 충분한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는 참된 믿음이다. 그런데 근거를 검사할 길이 없으므로 참일 논리적 가능성은 있다 하더라도, 이것은 지식은 아니다. 따라서 타노스가 얼마나 주관적 확신의 강도가 강하건, 그것은 오로지 명제태도의 문제일 뿐이요, 타노스 행위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걸맞는 명제 자체의 진리성에 대한 보증(warrant)을 산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객관적으로 볼 때 타노스는 허술한 독단에 빠져 전 우주의 절반을 제거했던 것이며, 그야말로 망상에 빠진 광신도에 불과했다.”
“이의 있습니다.”
변호인이 말한다.
“변호인, 말하시오.”
법정을 관장하는 판사는 변호인에게 발언권을 준다.
“피고인 타노스에 대한 기소는 세 사건으로 분리되어 제기되었습니다. 타노스가 거짓 믿음을 함부로 믿었다는 기소는 제1재판부가 맡은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제1판부에서는 타노스의 믿음이 참이었는지, 어떤 믿음을 참이라고 신뢰하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인식적 의무의 수준은 어떠한지, 타노스가 그러한 인식적 의무를 이행했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믿음을 획득하는 것이 심장 박동처럼 불수의적인 것인지, 그리고 타노스의 본성과 양육을 전제할 때 타노스가 그와는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었는지 하는 매우 까다로운 인식론과 형이상학의 문제를 풀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전문재판부인 제1재판부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관한 모든 논의는 본 법정에서는 제외되어야 합니다.”
변호사의 입에서 다소 침이 튀었다.
“이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재판장님.”
검사가 손을 들고 말했다.
“본 법정은 타노스가 선한 행동을 했는가 악한 행동을 했는가를 따지는 도덕의 법정입니다. 그리고 선한 행동은 인식적 의무를 충실히 다할 때에만 성립이 가능합니다. 중대한 과실로 다른 사람에게 큰 해를 입힌 사람은 도덕적으로 잘못을 저지른 것입니다. 인식적 의무의 해태는 다른 과실과 다를 바 없으며, 도덕적 당위를 위반하였는가를 따지는 본 법정에서 꼭 다루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도덕적 잘못 가운데 가장 흔히 보이는 것이 자신은 진리를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다른 사람은 거짓을 신봉한다고 주장하며 그 다른 사람의 이의를 적합하게 성공적으로 처리하지 않은 채 자신 마음대로 다른 사람의 운명까지 대신 결정해버리는 것임을 고려한다면, 이 문제는 결코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판사는 눈을 잠시 감더니 다시 뜨고는, 입을 열었다.
“제1재판부 역시 도덕의 법정 중 하나요. 인식적 의무의 해태가 비도덕적 행위임은 틀림없으나, 사건 분리가 이미 이루어진 이상 본 법정에서는, 타노스의 믿음이 참이었거나, 타노스의 믿음이 인식적 의무를 다 하고서 획득된 것이었다는 전제에서만 심리를 진행하겠습니다. 배심원들은 방금 검사의 논구(論究)는 없는 것으로 무시하십시오.”
“예쓰!” “야호!”
변호인 석 뒤의 타노스 부하 방청객들이 순간 소리죽여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은 타노스의 수족이었으므로, 그들의 죄책은 타노스 판결의 결과에 아주 많은 부분이 달려 있을 터였다.
판사는 줄줄이 같이 기소되어 있는 민둥머리 부하들의 소란에 살짝 이마를 찌푸렸지만 굳이 정숙을 언급하지는 않은 채 검사를 바라보았다.
“검사는 피고인의 도덕적 잘못에 대한 논구를 이어가시오.”
“네.”
검사는 약간 실망했지만 내색은 하지 않고 배심원들을 바라보고 섰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흐읍, 후!”
검사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본 법정이 이 문제를 제외한다고 해서 타노스가 도덕적으로 면제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설사 타노스의 믿음이 의문의 여지없이 참이라고 해보자. 이 가정은 정말 쉽게 해서는 안 되는 가정이다. 왜냐하면 인식적 오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으며 전지하지 않은 우리 유정적 존재는 그 믿음을 획득하기 위해 이행해야 하는 논증대화의 의무를 논외로 하고서, 어떤 믿음이 참이라는 가정을 그렇게 쉽게 도입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 검사는 본 법정의 결정을 존중하므로, 오로지 본 법정의 논의의 목적을 위한 가정으로, 타노스의 믿음이 참이라고 가정해보겠다.”
“타노스 잘못의 핵심은, 도덕적 선과 악이, 자신이 하는 행위로 인해 세상에 담기게 될 좋음과 나쁨에 의해서만 결정된다고 본 점에 있다. 그러나 도덕적 선과 악은 좋음과 나쁨을 어떻게 발생시켰는가에도 달려 있다. 타노스의 뜻대로 했으면 우주의 균형이 맞추어질 수 있다고 해도, 만일 그것이 우주인들의 도덕적 지위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발생되었다면 그것은 도덕적 잘못이다. 그리고 우주인들은 모두 스스로의 진지한 주권적 결정에 의하지 아니하고서는 생명을 잃지 않을 권리를 보유한 도덕적 주체들이다. 그런데 타노스의 행위는 그런 생명권을 보유한 개별 도덕적 주체에게 정당화되지 않는 방식으로 선을 추구한 것이다. 그리고…”
“이의 있습니다!”
검사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변호인이 다시 이의를 제기했다.
“변호인, 이야기하시오.”
“검사는 어마어마하게 중대한 쟁점에 관하여 그저 도덕적 주체의 지위니, 권리니 하는 말로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 밝혀두어야 할 바가 있습니다.”
“변호인의 변론 기회는 재차 주어질테니,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앉으시오.”
“네.”
변호인은 다시 일어나, 자리에 앉지 않고 계속 서 있는 검사 곁으로 나아간 다음 배심원들을 보고 말을 시작했다.
“도덕적 주체란 별 것이 아니다. 좋고 나쁜 일을 겪을 수 있으며 또한 다른 존재에게 좋고 나쁜 일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런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는 존재다. 그렇다면 도덕적 주체들을 최대로 존중한다는 것은, 그 도덕적 주체들이 겪을 좋음과 나쁨을 자의적으로 빠뜨리지도 할인하지도 않으면서 낱낱이 한 번씩 다 세어 고려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낱낱이 다 세면 그 도덕적 주체들이 겪을 나쁨의 총합을 뺀 순 좋음(balance of good)이 나온다. 이 순 좋음을 최대화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결국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도덕적 주체들이 겪을 사태를 덜 좋게 또는 더 못하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적 주체가 자신의 존재를 존중받을 지위를 표현하는 권리라는 개념은 바로 순 좋음을 최대화하는 행위를 돕기 위한 도구적인 규칙이다. 다시 말해 보통은 권리라고 일컫는 것을 보호하는 일이 옳은 일이 된다는 어림짐작 규칙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보통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을 뺏지 않는 일이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예외적인 경우는 다르다. 만일 예외적인 경우에도 도구적 규칙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규칙 물신숭배다. 왜냐하면 그것은 애초에 권리라는 도구적 규칙이 도입된 이유 자체에 자멸적이기 때문이다. 즉 규칙을 고집함으로써 오히려 순 좋음의 최대화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순 좋음의 최대화는커녕 뻔히 피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나쁨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피할 수도 있었던 어마어마한 나쁨을 그대로 발생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그 나쁨을 겪을 도덕적 주체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나쁨 쯤은 겪어도 된다고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생명권이란 다른 주체에게 일어날 아주 좋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뺏기지 않을 권리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잠깐”
변호인이 판사의 눈치를 보면서 짧게 자리에 바로 돌아가려 하자, 판사가 제지했다.
“방금 마지막 진술 뜻을 파악하지 못하는 배심원들도 있는 듯 하니, 그 부분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오.”
“네.”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사례는 정당방위 사례일 것이다. 나를 죽이려는 사람을 피할 방도가 그 사람을 죽이는 것밖에 없을 경우, 공격자의 생명을 뺏아도 생명권을 침해했다고 하지 않는다.”
배심원들 중 일부는 아직 납득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아마도, 타노스는 일방적으로 우주의 절반을 죽였을 뿐, 전혀 정당방위를 한 것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당방위에는 자기방위 뿐만 아니라 타인을 위한 방위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이를 곧 죽이는 것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면, 힘이 없는 아이 대신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다. 타노스는 바로 그렇게 대신해서 방위를 해주는 고뇌에 찬 역할을 떠맡았다. 우주의 균형이 깨지면 우주인들은 모두가 멸종한다. 이렇게 멸종의 위협이 되던 것은 바로 우주인들 중 누군가로는 특정되어야 할 절반이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위협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타노스가 대신 방위를 해준 것이다. 타노스가 방위를 하지 않았다면 모두가 멸종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속가능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수를 최대화하는 것, 그 목적이야말로 생명권이라는 도구적 규칙의 핵심이다. 그러므로 최대의 생명을 남기기 위해 절반의 생명을 죽인 것은 생명권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 생명권을 최대한 존중한 것이다.”
변호인은 판사의 질문 덕분에 자세히 자신의 변론을 펼칠 수 있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에 돌아왔다.
도덕의 법정을 주재하는 판사는 주의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배심원들에게 보충 설명을 했다.
“배심원 여러분이 고찰해야 하는 쟁점을 정리하겠습니다. 우선 우리 법정에서는 타노스가 우주의 균형에 관하여 가졌던 믿음이 참이라고 가정합니다. 그리고 이 가정 하에서 변호인의 주장은 타노스는 어마어마하게 선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변호인의 핵심 전제는 도덕적으로 옳은 일은 결과 사태에 얼마나 많은 순 좋음이 담기는가라는 것입니다. 우리 법정에서 전제로 삼는 우주의 균형에 가정과 변호인의 핵심 전제를 받아들일 경우에는 변호인의 변론은 성공합니다. 즉 타노스가 하려는 일이 성공하는 경우(A)와 타노스가 하려는 일이 실패하는 경우(B)를 비교할 때, 성공의 경우에 전우주에 담기는 선의 크기(Size of A)가 실패하는 경우 전우주에 담기는 선의 크기(Size of B)보다 어마어마하게 크다면, 타노스는 어마어마하게 선한 행위를 한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주목하여 변호인의 핵심 전제를 잘 살피십시오.”
그러자 검사가 벌떡 일어났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절차 진행을 위한 설명은 사려깊으시나, 검사는 변호인의 핵심 전제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고 주장하는 바입니다.”
“다른 전제가 무엇이오?”
“그것은 바로 친출생주의(pro-natalism)가 참이라는 전제입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